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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한국까지 와서 소송을 할까

최종 수정일: 11월 19일


그들은 왜 한국까지 와서 소송을 할까

 

해외입양인들의 귀환과 입양인 당사자운동 (2000년대 초~2012년)

대한민국이 6ㆍ25 전쟁 이후 태어난 혼혈 아동들을 외국으로 내보내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남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외국으로 지금까지도 계속 “보내지고” 있다. 그 숫자는 20만 명에 달한다. 혼혈 아동을 내보내기 위해 만들어졌던 국제입양시스템이 점차 산업화되면서 1970~1980년대에 가속화되었고, 1985년 한 해에 8,837명 아동들을 국외로 내보낸 것으로 정점을 찍었다. 

입양인 자신들이 태어난 이 땅으로 “귀환”하는 현상은 이들이 성년이 되기 시작한 즈음인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두드러졌다. 이들은 본인의 또는 주변에서 보고 들은 해외입양인 잔혹사를 증언하기 시작했고,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들은 추호도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경험과 온갖 감정적 스펙트럼을 당사자로서 말하기 시작했다. 귀환한 입양인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이 땅에서 입양인 당사자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을 이끌었던 입양인들이 주로 20~30대였던 때이다. 운동의 열기는 불타올라, 결국엔 2012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정부에게 보편적 출생신고제를 권고하게 만들었고 입양특례법이 개정되어 출생신고가 완료된 아동들만 한국 법원에 의해 국제입양이 결정되도록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 후, 입양인들이 한국을 떠나거나 각자의 삶을 꾸리는 시점을 맞이하게 되면서 운동의 동력은 잠시 주춤해졌다. 


아담 크랩서의 국가배상청구소송 (2019년)

처음에 입양인들은 한국 법제도를 활용한 소송으로는 운동을 제기하지 못했다. 입양기관이 보관하는 입양기록은 자신들에 대한 기록임에도 접근하기 힘들었고, 입양인 이슈를 알고 있는 한국 법률가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내보내진 입양인들이 다시 한국으로 추방당하여 돌아오는 사례가 확인되기 시작했다. 한국이 아이들을 미국으로 보낼 때 시민권 취득이 보장되지 않는 비자로 내보낸 것이다. 추방된 입양인 중 한 명이 미국입양인 아담 크랩서(한국 이름 신송혁)였고, 아담은 2019년 1월 한국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해외입양인이 한국에서 국제입양 문제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최초의 사례이다. (현재 2심 진행중이다)


카라 보스의 소송 (2019년)

같은 해인 2019년 11월, 미국입양인 카라 보스(한국 이름 강미숙)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찾던 중 우연히 생부를 찾았지만 그가 친어머니에 대해 알려주지 않자 생부를 상대로 인지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해외입양인이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두 번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아담 크랩서가 국제입양에 대한 한국정부와 입양기관의 책임을 묻는 청구를 하였다면, 카라 보스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생부에게 인지청구 소송(생부의 친생자임을 인정받는 소송)을 한 것이다. 법원은 카라 보스와 생부의 유전자 검사를 받도록 명령했고, 유전자 정보가 일치하여 카라 보스는 2020. 6. 12. 승소하였다.  


해외입양인 375명의 진화위 조사 신청 (2022년)

해외입양인 총 375명은 2022년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국제입양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이 진실규명 신청은 한국 법원을 통한 소송 제기는 아니지만, 이 신청사건의 조사 주체인 진화위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근거하여 한국의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독립된 정부조사기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외입양인들의 진화위 신청사건은 아직 조사중에 있다. 


덴마크 입양인의 행정소송 (2024년)

2024년 7월 한 덴마크 입양인은 한국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을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 덴마크 입양인은 2022년 12월 아동권리보장원을 상대로 입양정보 공개를 청구하였으나, 아동권리보장원은 이를 거부하였다. 입양인 측은 이러한 거부처분이 위법하며, 입양정보 공개 관련 법률 조항 자체에 위헌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정부(산하 공공기관 포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해외입양인으로서는 아담 크랩서에 이어 2번째, 행정소송을 제기한 해외입양인으로서는 첫번째이다. 


친생부모의 국가배상청구소송 (2024년)

미국입양인의 친생모인 한태순 씨는 2024년 10월 7일 한국정부와 입양기관, 보육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한태순 씨는 1975년 5월 실종되었던 6살 딸을 44년이 지난 2019년 10월에야 찾아냈고, 그 딸이 실종된지 9개월 만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태순 씨의 사례는 한국정부가 국제입양을 확대하고 절차를 신속화하면서 실종아동을 친부모에게 찾아주는 노력을 등한시하여 가족간 씻을 수 없는 비극을 만든 사실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실종아동이 부모를 찾지 못하고 해외로 입양된 사례에서 입양인 친부모가 한국정부의 책임을 묻는 최초의 소송이다.  


20만 명 해외입양인들과 그 가족들의 진실이 밝혀지는 날까지

해외입양인 당사자들이 한국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200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약 20년이 지난 지금,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노력과 시간이 더해져서 과거의 진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커지고 있다. 현재 입양아동 수령국들의 언론과 반응은 한국의 불법입양에 대한 이야기로 들끓고 있다. 유럽 수령국들에 비해 국제입양 문제에 관심이 없던 미국조차도 최근 공영방송사 PBS가 한국 국제입양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한국 국제입양의 귀추에 주목하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 언론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다. K-Pop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는 한국 언론이 들썩이고 있는데, 한국의 부끄러운 과거(현재진행형이다)에 대해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선택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외국에 거주하는 외국국적자들이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해외입양인들은 그 어려움을 견디며 지난한 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한국의 친생부모까지 국제입양을 부추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다. 해외입양인 20만 명의 진실이 계속 드러남에 따라, 더 많은 소송과 법적절차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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